우리 주변에 보면, 이재에 밝고 손익계산서를 두들겨 보고 여기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사람은 나에게 도움이 될 사람이고, 저 사람은 나에게 도움이 안 될 사람이고, 여기는 나한테 도움이 되고 저기는 도움이 안 되고” 여기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차원에서 바울을 보면, 오네시모를 받아주고 가까이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설령 받아 준다고 하더라도 적당하게 거리를 두면서, 그래야만 황제에게 재판 받을 때 불리하지 않겠죠? 그래야만 골로새 교회 리더인 빌레몬에게도 원망을 듣지 않을 수 있겠죠? 그래야만 골로새 교회에도 문제가 안 생기고 교회가 잘 돌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바울은 손익계산서를 두들기지 않고 오네시모에 대해 사랑을 나눴습니다. 말로만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오네시모의 잘못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오네시모의 잘못에 대한 변상, 보상, 책임을 대신 지겠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해야 했을까요? 그만큼 오네시모를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 대해서도 똑같이 손익계산서를 두들기지 않고서 책임을 다하려고 했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금전적으로 변제하고, 실질적으로 행하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재정적으로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눅 12:34) 바울은 예수님의 이 말씀에 충실하게 순종하려고 했었던 것이었습니다. – 안광문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