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서를 보면, 바울은 “크레타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거짓말쟁이요, 악한 짐승이요, 먹는 것밖에 모르는 게으름뱅이다” (딛 1:12)라는 말씀을 인용합니다. 이는 사실 바울이 한 말이 아니라 “에피메니데스”라는 분이 한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크레타 사람들은 신의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고 탐욕만 가득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을 다스리기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위압적 자세로 내리누르고, 좀 더 거칠게 다루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세상 사람들 말대로 강한 카리스마로 다스리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바울은 전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말합니다.
장로는 고집을 부려도 안 되고, 성을 내도 안 되고, 더군다나 폭력도 안 된다고 합니다. 그 대신 술을 즐기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절제하고, 삼가고, 조심하는 가운데 섬기는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사람들은 “물이다.”라고 하면서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닐까요? 조롱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연약한 자세로 그 만만치 않은 크레타 사람들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요? 그런데 성경 말씀은 한결같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위임받은 일꾼들은 언제나 이와 같은 겸손하고 경건한 모습으로 섬겨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다스리고, 관리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군림하는 게 아닌 섬기는 리더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언제나 다른 사람들 앞에 서게 될 때, 혈기보다 절제와 근신, 군림하기보다는 섬기는 모습을 잃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의 섬김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 안광문 목사 –